나눔의글
[사법시험은 왜 폐지되어야만 하는가]
1. 들어가며
2007. 7. 27. 우리 사회는 오랜 숙고 끝에 한 가지 합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설치ㆍ운영에 관한 법률」의 제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동법 제1장 총칙에서 보듯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건전한 직업윤리관과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법조인의 양성'을 교육이념으로 삼아 각고의 노력 끝에 출범한 법학전문대학원 체제는, 종래 법조인 선발을 담당하던 사법시험의 뿌리 깊은 병폐를 해결하고자 한 제도의 취지를 이어가기 위하여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17. 12. 31. 시행예정인 [법률 제9747호, 2009. 5. 28 ] 「변호사시험법」 부칙입니다.
매우 간단하고도 확고한 한 줄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위 법령 제2조에 따르면, "사법시험법은 폐지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동법 제4조에서 다시 "「사법시험법」에 따른 사법시험을 2017년까지 실시한다. "고 함으로써 2017년에는 사법시험제도가 완전히 폐지될 것임을 천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제도의 안정적인 정착과 옛 제도의 폐지로 인한 혼란의 방지를 위하여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유예기간을 주었음에도, 이제 그 유예기간이 다해감에 따라 사법시험제도의 존치를 꾀하는 일각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언론과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국민들을 현혹하고, 막 뿌리를 내리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헐뜯기를 억수같이 하므로 어렵사리 마련한 제도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희망의 사다리'와 같은 선동구로 치장한 일련의 사시존치 주장은 일견 그럴듯해 보일 수 있으나, 자세히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다면 왜 지난날 대대적인 법제의 개편과 대학기관의 폐쇄까지 감수하며 어렵사리 사법시험으로 대두되는 사법체계를 개혁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왜 우리는 사법시험제도를 개혁하였는가?
(1) 희망의 사다리 -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
많은 이들이 종래의 사법시험체제를 옹호하는 논거가 이른바 '희망의 사다리' 론입니다.
맞습니다. 사법시험은 빈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응시'가능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동안의 사법시험이 빈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합격'가능한 시험이었을까요?
거두절미하고 통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법무부 / 대학정보공시 등)
1963년부터 2014년까지 총 696,331명이 사법시험에 응시하였고, 이 중 20,450명이 합격하였습니다. 합격률로 따지자면 2.94%입니다. 평균 수험기간은 4.79년 이상이 소요되었으며, 소요경비는 소위 '신림동 고시촌'이라 일컬어지는 곳을 기준으로 주거비와 식비, 학원비 및 교재비 등으로 월 140만 원 가량 지출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평균 수험기간을 곱하면 8천만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보다 적은 비용으로 수험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이상 지출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금액의 다소를 차치하고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는데 소요되는 모든 경비는 전적으로 당장의 자비로 충당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제 로스쿨 제도를 살펴봅시다.
로스쿨의 학비는 비싼 편입니다. 국·공립대의 경우 한 학기 평균 등록금이 518만원, 사립대의 경우 931만원입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로스쿨 제도가 가난한 사람은 엄두도 못내는 귀족학교라는 인식이 더하여졌습니다.
그러나 실제 통계자료를 보면 오히려 그동안의 편견과 배치되는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인원 중, 가구 연소득이 4,565만 원 이하인 인원이 총 1,823명으로 전체의 32%를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고, 2010년부터 2015년까지 평균 129.7명, 누적인원 778명의 취약계층이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왜 이들은 로스쿨을 선택하였을까요? 바로 대부분의 법학전문대학원이 이들에게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장학제도와 더불어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특별전형제도의 마련으로 인해 제4회까지 치러진 변호사시험에서 총 315명의 사회·경제적 취약계층 입학생이 법조인의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법학전문대학원의 특별전형 제도는 종래의 사법시험에서 극적으로 합격한 몇 안 되는 성공 '신화'와 달리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법시험이 왜 '희망의 사다리'가 될 수 없는지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절대적 평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법시험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같은 출발 선상에 세워 둔 채 장거리 레이스를 겨루는 시험입니다. 일체의 수익활동이 불가능한 오랜 시험에 지쳐 낙오하는 것은 결국 누구의 몫이 되겠습니까? '희망의 사다리'는 희망만 품다 끝나버리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로스쿨을 선택한 한 학생이 쓴 다음의 수기를 보면 이는 극명해 집니다.
"저희 집은 가난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식당에서 일하고 계시고 따로 지내시는 아버지께서는 결핵을 앓으신 뒤 뇌와 안구에 후유장애를 가지고 계셔 일도 하지 못하십니다. 이렇게 된지도 꼬박 20년이 넘었습니다. 힘들게 모아 마련한 20평 주공아파트도 날아가고 보증금 1500에 월세로 근근히 삽니다. 다만 제 나이와 부모님의 의사로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10여년을 아르바이트하며, 다니던 대학교를 8년만에야 겨우 졸업했지요.
저도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어요. 다리 펴고 누우면 머리 위에 행거가 지나가고, 발 위엔 책상이 있는 창문 하나 없던 그런 고시원에도, 어둡고 습한 반지하 자취방에도 살아봤지만, 학교 다니며 틈틈이 벌어오는 월급으로는 매달 월세 낼 돈도 빠듯했습니다. 돈이 떨어진 날에는 학교서 물도 떠다먹고 라면하나 살 돈이 없어서 10원짜리를 긁어모아 700원을 만들어 라면 한 봉을 끓여먹고 그랬습니다. 집에 손을 벌리자니 집안사정 뻔히 아는데... 진짜 굶어 죽기 전에야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률 아시죠? 3%도 안 됩니다.
제가 사시를 준비했다면 97% 실패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친구들은 하나 둘씩 취업하는데도 집안사정 나몰라라하고 어머니께서 식당일 해서 벌어오는 그 돈 조금으로 5년씩 틀어박혀 공부 할 수 있겠습니까?
전 다행히 잘 풀린 케이스입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로스쿨 제도가 도입이 되었고, 전역하고선 학점을 올리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토익공부도 했습니다. 로스쿨 떨어져도 취업을 위해 쓸 수 있었거든요. 제가 사법시험을 고집하고 있었다면 학점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을 거예요. 나이가 차 취업도 힘들었을 거구요.
지금은 국립대 로스쿨에 다니고 있습니다.
학비 생활비 만만치 않은 것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돈은 지금 당장 제가 부담해야 하는 돈이 아닙니다. 장학재단 대출이 되는 정규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당장 집에다 손을 벌려야 하는 사시와 달리 제가 열심히 한다면 변호사가 된 이후 최장 20년의 거치·상환기간동안 나누어 내면 되고, 생활비도 로스쿨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제1금융권의 마이너스 통장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변호사가 된 후 갚아야 할 빚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당장의 한 푼이 아쉬워서 꿈을 포기해야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 로스쿨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3학기 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저는 학교 장학제도의 도움으로 첫 학기에 반액, 두 번째 학기에 기성회비 전액, 이번 학기에 기성회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았고, 다음 학기에는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습니다. 3학년을 졸업할 때까지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저는 총 400여만 원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습니다. 제가 학부를 다니며 소요된 금액이 2,000여만 원인데 오히려 5분의 1에 불과하지요.
제 경우가 일반적인 경우일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당장의 자비로 평균 5년간을 쏟아 부어도 97% 실패가 예상되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에 저는 너무 가난했다는 것입니다. 제 경쟁자가 될 이들 중에는 집안의 지원으로 돈 걱정 없이 강의 마음껏 들으며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하루하루 아르바이트에 치이는 제가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까?
사법시험은 가난한자가 용이 되는 시험이 아닙니다. 하물며 법조인이 더 이상 '용'이 되어선 안 되지요. 법조인의 꿈을 생각하시고 도전하시는 가난한 고학생여러분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로스쿨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2) 개천의 용 - "용이 아니라 연어가 되어야"
'희망의 사다리'와 더불어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일각에서 줄기차게 내세우는 문구가 '개천의 용' 입니다. 두 문구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계층의 수직상승을 의미한다는 것이 바로 그 것입니다. 고등고시 사법과를 거쳐 법조공무원 선발시험으로써 출발한 사법시험은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에 마치 과거에 급제한 것과 같은 드라마틱한 성공신화를 남겨왔습니다. 가난한 고학생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출세를 하는 것은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되었고, 이 가운데 나타나는 배신과 야망은 공분과 동시에 시샘어린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른바 '사시패스'로 대변되는 보장된 출세길은 많은 폐단을 낳았지만, 한편으론 로또를 바라는 심정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가 낳은 영웅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법조인이 국민위에 군림하며 떵떵거리던 시대를 그리워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국민위에 자리하던 기형적인 시대가 지나고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국민이 주인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법조인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국민의 작은 소리는 묻히어 갈 것이고, 그들이 사다리를 오르면 오를수록 낮은 곳에서 신음하는 국민들은 멀어져만 갈 것입니다.
'반값 변호사'가 생겨나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마을 변호사' 제도가 무변촌의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어 가는 광경은 종래의 사법시험 체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서, 이를 두고 변호사 업계에서는 생계형 변호사니 협회비도 못내는 변호사니 하여 폄훼하고 있지만, 그간 법률서비스에서 소외되어 온 국민들로서는 로스쿨 제도가 가져온 이러한 혜택을 통하여 늘어가는 법적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보다 손쉽게 고충을 해결할 통로를 확보 할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액사건과 같이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건에도 변호사가 진출해야 하는 상황 역시 소비자의 관점에서 받을 수 있는 법률 서비스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지방대육성법)' 시행령의 제정으로 전국 각지에서 정원의 20% 이상이 해당 지방 로스쿨에 입학함으로써, 수도권에 과밀 되었던 법조 인력이 전국 곳곳에 확산 될 날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고무적입니다.
이제 법조인은 더 이상 개천을 버리고 홀로 승천하는 '용'이 될 것이 아니라, 난 곳으로 돌아가 개천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연어'가 되어야 합니다.
(3) 법학교육의 황폐화 - "일회성 필기시험에 의한 선발"
사법시험과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가장 큰 차이는 제도의 목적이 '선발'을 위한 것인지, '양성'을 위한 것인지에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는 필기시험을 통한 법조인의 선발과정에서 탈피하여, 국가가 대학교육과 손을 잡고 확고한 교육이념에 따라 법조인을 양성하는 제도로써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종래의 사법시험이 단순 암기식의 법률지식만을 평가하여 법조인을 선발토록 한 관행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일회성의 필기시험만으로 법조인을 선발하다 보니, 법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온전히 함양할 기회를 갖기 어려웠습니다. 시험 문제 한 두 개로 벼락출세의 길이 좌우되는 세태에서 대학이 지향하는 전인적인 법학교육은 황폐화 될 수밖에 없었고, 젊은이들은 '한 방'을 위하여 너도 나도 학원 강사가 제시하는 문제풀이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09. 2. 26. 자 [2008헌마370] 결정문에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법조인 양성제도는 사법시험제도에 의하여 왔다. 사법시험은 사법시험법에 따라 법무부가 관장하고 있는바, 사법시험 응시회수에 아무런 제한이 없고, 사법시험 응시자격에도 실질적으로 제한이 없다시피 하여(2006년부터 35학점 이상의 법학과목 학점을 취득한 자에 한하여 응시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학점 인정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학교 이외의 교육기관에서의 학습과정에서도 법학과목 학점을 취득할 수 있고, 독학사 제도 등에 의한 학점인정도 가능하여 위와 같은 자격제한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였다) 법조인 선발·양성과정과 법과대학에서의 법학교육이 제도적으로 연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법학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사법시험에만 합격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으므로, 법조인이 되기를 원하는 우수한 인력들이 대학에서의 법학교육을 도외시하고 고시학원으로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고, 충분한 인문교양이나 체계적인 법학지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시험위주의 도구적인 법률지식만을 습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폭넓은 인문교양지식과 깊이 있는 법학지식을 함께 습득함으로써 사회의 다양한 법 현상에 적응할 수 있는 응용력과 창의성을 갖추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국제적인 감각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법률서비스의 질과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게 되었다."
이렇듯 형해화 된 법학교육을 정상화 시키고, 다양한 전공 지식과의 조화를 통해 다원화되고 복잡해져가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전문대학원이라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개편하게 되었고, 그 결과 2014년도 입학자 기준으로 53.23%의 학생들이 상경, 공학, 의학 등 다양한 전공분야에서 법조계로 유입되고 있어 향후 법률서비스의 저변이 널리 확대되리라 짐작케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공분야의 다양성은 2014년도 제56회 사법시험합격자 중 비법학 전공출신자가 18.63%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여 괄목할 만 한 수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 그들만의 리그 - "학벌주의와 연수원 기수문화“
법정을 배경으로 최근 개봉한 영화 '소수의견'에서는 '지방대 출신'에 근본이 없다고 무시당하는 한 국선변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과연 이 같이 팽배한 학벌주의가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픽션으로 치부될 수 있는지 통계를 통해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무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4년까지 흔히 말하는 상위 10개 대학이 전체 사법시험 합격자의 84.52%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지방대학의 합격자 수는 한 자리 수준으로 맴돌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영화에서와 같은 학벌주의가 기존의 법조계 전반에 깊게 스며있음을 가늠케 하는 대목입니다.
이에 비해 로스쿨 입학생의 경우 출범이후 올해까지 연 평균 95개 대학에서 입학생을 배출하였습니다. 이는 사법시험체제가 연 평균 43개 대학에서 합격자를 배출했던 것과 비교하였을 때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의 증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천대 출신 합격자를 운운했던 사법시험 존치 측의 발언이 무색해지는 결과입니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 6개 학교 합격자 쏠림현상 역시 사법시험 당시 76.56%에서 로스쿨 입학 기준 65.97%로 10.59%가 감소한 사실을 볼 때 유의미한 학벌편중현상의 완화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연수원 기수'로 대변되는 제 식구 감싸기입니다. 사법연수원이라는 단일 창구에서 2년여를 함께 고락한 그들로서는 무엇보다도 끈끈한 전우애가 생성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그들의 끈끈한 전우애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러한 끈끈함이 국민에 앞서, 정의에 앞서 발현되는 것입니다.
모든 법조인이 사법연수원이라는 통로를 거쳐 배출되었던 시기에는 '사법연수원 몇 기'라는 수식어가 모든 법조인의 가슴에 훈장처럼 따라 붙었습니다. 이러한 훈장은 때로는 변호사를 선임할 때 참조되는 가격표가 되기도 하였고, 검찰과 법원에서 동기들이 함께 옷을 벗을 때는 후배들에게 '전관'이라는 무거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비하여 로스쿨은 단일 창구로 수렴하는 종래의 시스템을 벗어나 전국에 산재한 25개의 대학을 통하여 법조인을 양성해 내고 있습니다. 이는 더 이상 누가 누구의 연수원 동기인지에 따라 판결의 유리함을 점칠 가능성이 희박해 졌음을 의미합니다. 기수문화를 과감히 버림으로써 우리 사회는 판결을 통한 실체적 정의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사회적 낭비 - "고시낭인의 발생"
앞서 살펴본 [2008헌마370] 결정문에서도 명시하였듯, 종래 사법시험제도 아래에서 실질적으로 응시자격에 제한이 없고 응시회수에도 아무런 제한이 없다 보니, 과다한 응시생이 장기간 사법시험에 빠져있는 폐해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응시자격을 용이하게 취득할 수 있다 보니, 법학 이외의 인문사회계열이나 심지어 이공계열의 우수한 인재까지도 전공학과 공부보다는 사법시험에 매달리게 되어 비단 법학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대학교육에까지 파행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법조인 선발 및 양성과정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탈락하고 사회 다른 분야로의 진출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국가인력의 극심한 낭비 및 비효율성이 발생하였습니다.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스쿨 역시도 변시 낭인, 로스쿨 낭인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 같은 반문은 로스쿨 체제의 특수성을 간과한 것입니다.
학점과 영어능력을 중요시 하지 않는 사법시험과 달리 로스쿨의 입학은 주로 법학적성시험인 LEET점수와 공인영어점수, 학점과 자기소개서, 구술면접 등으로 평가됩니다. 이 중 법학적성시험을 제외한 학점, 영어, 면접 등의 요소는 비단 로스쿨 입시뿐만 아니라 취업을 위해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로스쿨 입시에 사법시험과 동일하게 횟수 제한이 없음에도 극심한 입시 낭인이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호환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로스쿨을 위하여 준비한 노력들은 비록 로스쿨 입시에 쓰이지 않더라도 결국 취업을 위한 자산으로 남게 됩니다. 반면 사법시험 체제하에서 '법'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가 97%의 확률로 실패를 하게 될 경우 이러한 노력이 '호환'되는 취업장은 극히 드뭅니다.
지원자가 로스쿨에 입학한 뒤 변호사 시험에서 떨어지는 경우 역시 상정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 시험은 5회의 응시횟수가 제한되어 있고, 합격률이 75%로 사법시험에 비하여 월등히 높은 관계로 변시 낭인이 발생할 확률 역시 최대 5년, 25%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무한정 변시 낭인이 늘어날 수는 없는 구조라는 말입니다.
만일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 변호사 시험을 결국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사회에서 수용할 곳이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졸업한 로스쿨은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국가가 인정한 교육 과정 속에 편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시험에 실패한 졸업생들은 비록 변호사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전문석사의 학위를 부여받은 고급인력으로써 취업시장에 나갈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일련의 시나리오는 로스쿨의 제도적·구조적 특수성 덕분에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위험부담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종래의 사법시험 체제 하에서 사회적 취약계층은 더욱 위태한 외줄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에, 제도를 개혁하여 로스쿨 체제가 도입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6) 왜 그들은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가? - "소수 엘리트주의로의 회귀"
앞서 설명한 로스쿨 제도의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존치론자들의 방해가 계속되는 한, 새로운 제도를 향한 염원은 더디게 진행되어 갈 것입니다.
왜 그들은 사법시험의 존치를 주장하는 것일까요?
혹자는 사법시험과 로스쿨 제도가 병존되면 더 많은 법조인들이 배출되어서 국민들의 법률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더욱 높아지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이러한 물음은 첫째, 사법시험이 가진 병폐에 비해 미미한 효용을 내세워 유지시키기에는 과다한 세금이 로스쿨 제도와 사법시험에 이중으로 투입된다는 점,
둘째, 교육을 통한 법조인의 양성을 목표로 개편되는 법조체계에 또다시 과거의 일회성 필기시험을 통한 선발이 가져오는 폐단을 고스란히 남긴 채 운영되는 것은 문제해결에 있어 무용하다는 점,
셋째, 사법시험과 법학전문대학원의 두 가지 통로로 법조인이 배출되는 경우 법조계 전반에 파벌이 형성되어 파행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
넷째, 사법시험 존치론자들의 종국적 주장은 결국 법조인의 수를 줄여 종래에 누리던 기득권을 유지함에 그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불가하다 할 것입니다.
특히 법조인 수의 감소를 불러와 다수의 국민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네 번째 이유에서 사법시험의 존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조속히 개선되기를 희망하는 바입니다. 비록 '희망의 사다리' 등의 미사여구로 본질을 호도하고 있으나, 그들의 주장은 명료합니다. 변호사 수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하창우 변협회장 당선자 "상고법원 반대…변호사 줄여야"」 -머니투데이 2015. 01. 13. 발췌-
(중략) 하 변호사는 "넘쳐나는 변호사 숫자로 인해 젊은 변호사들이 취업도 하지 못하고 일거리도 없이 어려운 지경에 있다"며 "사법시험을 존치시켜 사법시험을 통해 200명, 로스쿨 출신 800명 총 1000명으로 신규 변호사 수를 제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사법시험 존치와 변호사 수 제한을 위해 국회와 협의해 관련 입법을 추진토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쉽지 않겠지만 의원들의 양해를 구하고 법무부에 강력히 요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 변호사는 전날 역대 2회째 직선재로 치뤄진 선거에서 총 유효투표수 8992표 가운데 3216표를 득표해 최종 득표율 35.77%로 3분의1을 넘겨 결선투표 없이 당선됐다.
사법시험 존치를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대한변호사협회의 회장으로 당선 된 하창우 변호사는 여러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연간 배출되는 변호사 수 약 2000명에서 절반(로스쿨 800명+사법시험 200명)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수차례 공언한 바 있고, 지금도 그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논지는 종국에는 '변호사 수의 감소'로 귀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어느 제도가 국민의 권익을 위한 것인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지금의 형국은 이익단체인 변협의 주장에 일반 국민들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며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셈이니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편견을 지우고, 철옹성 같던 제도를 어렵사리 개혁해 낸 과정을 거슬러 살피면 답은 명확히 보입니다.
3. 맺으며
지난날 「법학전문대학원 설치ㆍ운영에 관한 법률」을 마련하며 동법 제3조에서 '국가 등의 책무'를 명시한 것은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일부 반대론자들에 의하여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제3조(국가 등의 책무) ① 국가, 「고등교육법」 제2조제1호에 따른 대학(같은 법 제30조에 따른 대학원대학을 포함한다. 이하 "대학"이라 한다), 그 밖에 법조인의 양성과 관련된 기관 또는 단체는 제2조에 따른 교육이념의 취지에 부합하는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하여 상호 협력하여야 한다. ② 국가는 법조인의 양성을 위하여 재정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제 국가와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는 그 책무를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일회성 필기시험으로 사회 전반에 막중한 영향을 미칠 법조인의 자질을 담보하던 구습을 탈피하고, 확고한 교육이념과 국가적 지원 속에 양성된 법조인을 통하여 이 사회에 보다 널리 체계적인 법률서비스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한정된 세금을 더 이상 존립의 명분을 상실한 사법시험에 쏟아 부을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계층에서 가진 재산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교육을 통하여 법조인으로서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 응당 지난날의 약속에 답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법시험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는 우리 사회가 지난날의 반성을 통해 입법으로 다진 약속입니다. 이제와 사법시험의 존치를 주장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깨고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의 6천 재학생과, 8천명의 졸업생, 현행 법률을 신뢰하고 그에 따라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에 맞추어 진로를 선택한 수십만의 학생들과 그 가족들을 대신하여 우리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정상적인 운영과 안착을 위해 법령에 따라 사법시험제도를 폐지할 것을 청원하는 바입니다.
-제12대 법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
게시물수정
게시물 수정을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댓글삭제게시물삭제
게시물 삭제를 위해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