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글
유승민, 왜 배신자인가
I
많은 ‘꼴통보수’가 포함된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자’들이 있다. 이들은 유승민 의원을 배척해마지 않는다. 이유는 알다시피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유승민이, 자신을 정치가로 만들어준 박근혜를 배반했다는 것이다. 그자는 정치가이기 전에 벌써 인간적으로 글러먹었기 때문에 아예 꼴도 보기 싫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자신이 ‘금 수저’임에도 ‘흙 수저’를 위한답시고 ‘따뜻한 보수’라는 기치를 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자의 태생적 계급으로 보아 그 기치에 진정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지지의 폭을 넓히기 위한 회색적 술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먼저 전자에 관해서 냉철하게 한 번 말해보자. 세속에서 사람들간의 사회적 관계는 상호적이다. 특히 정치의 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유승민은, 당시 박근혜의 말과 태도에서 그녀의 정치경제적 이념이 자신의 그것과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섰기 때문에, 그리고 박근혜 역시 그 믿음에 대한 호감을 그에게 나타냈기 때문에 그녀의 측근에서 멘토 역할을 하게 되었다. 만약 그에게 그런 믿음이 서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그녀의 캠프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그런 믿음을 가지지 않았으면서도 오직 정치적 야심에서 그녀의 캠프에 들어가 일했다고 단정한다면, 그게 바로 꼴통적 단정이다. 보편의 상식과 합리적 추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무대까리’ 단정인 것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자 당연히 유승민은 그녀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는 박근혜가 대선과정에서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이념을 받아드린 것을 보고 크게 고무되었을 것이다. 심지여 그녀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서 고 박정희 대통령의 잘 못된 점을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사죄까지 했다. 이를 두고 조갑제는 ‘박근혜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었다’고 분노했다.
유승민이 볼 때, 또한 모든 이의 눈에도, 당선 후에 박근혜의 실제 행보는 끝내 그게 아니었다.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 보수 언론, 보수 꼴통들로부터 크게 비판 받았다. 비판 정도가 아니라 조롱까지 당했다. ‘경제학 그 어디에도 없는, 보도 듣도 못한 경제민주화. 이거 어디서 주워온 것이며, 도대체 그 개념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자, 박근혜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점점 빠져들게 된다. 그녀의 처지를 이해는 하지만 결코 자신의 경제민주화를 포기할 수 없는 김종인은, 그 비열하게 무식한 비판들을 묵묵히 뒤로하고 새누리당을 떠난다. 이 또한 유승민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였으리라.
유승민은, 떠나는 김종인과는 달리, 새누리당을 지키면서 자신에게 함양되어 있는 ‘따뜻한 보수’라는 철학적, 정치경제적 소신을 흔들림 없이 계속 밀고 나간다. 이러한 유승민을 겨냥해서 끝내 박근혜는 ‘배반의 정치를 심판하고 진실한 정치가를 세워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이로 인해 친박 위에 군림하는 ‘진박’이 대두된다. 이것은 박근혜 스스로가 자신의 정치적 토대인 새누리당 내부에 정파적 갈등과 분열을 가일층 복잡·심화시키는 불씨를 심은 것이다. 이 불씨로 인한 불이 예상 외로 커지고 심각해지자, 박근혜는 급기야 유승민을 ‘반박’의 핵심이라 보고 그를 배반자로 낙인처서 결국 국회에서 ‘찍어냈다’. 유승민이 조금만 소신을 굽혔더라면 그런 정치적 사형(死刑/私刑)이 없었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굽히는 척이라도 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오히려 누구보다도 떵떵거리는 자리를 닦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늠름하게 그 사형을 받았다. 하늘의 뜻을 믿었기 때문이다. 맹자는 <맹자>에서 ‘하늘은 백성이 보는 데로 보고, 백성이 듣는 데로 듣는다’고 했다.
원 내외에서 두루 지지가 탄탄한 실력자, 눈에 가시 같던 유승민이 찍혀나가자 특히 진박은 입이 쩍 벌어지고 기세가 더욱 등등해진다. 때마침 국회의원 지역구공천 시기가 왔다. 진박으로서는 가장 두려운 정파적 적이 될 가능성이 큰 유승민을 아예 정치의 장에서 제거해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일찍부터 청와대 ‘빽’이 든든한 이한구는, 최경환 그리고 박근혜가 ‘누님’인 윤상현을 필두로 하는 진박들의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엄호를 받으면서, 소피스트적 궤변과 비열한 방식으로 그야말로 ‘칼 춤 추듯이 횡포를 부려’ 엄청난 ‘거악 (巨惡)’을 저지르면서 유승민의 정치적 목줄을 끊어버렸다[* 단식 중에 이정현은 정세균의 그 말 한마디를 두고 “칼 춤 추듯이 횡포를 부렸다 (…) 이건 거악(巨惡)이고 엄청난 부조리”라고 비난했다. 어- 허허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결국 ‘배반’이란 강자 박근혜의 언어이고, 강자 측의 시각인 것이다. 냉철하게 따져보자. 도대체 누가 누구를 배반했단 말인가? 유승민이나 김종인은 시종일관 자신의 철학과 신념대로 나아갔을 뿐이다. 배반이라면 오히려 박근혜가 유승민을 배반했다. 박근혜가 강자이기 때문에, 어처구니 없게도 유승민이 배반자가 된 것이다.
후자(따뜻한 보수)에 관해서 말해보자. 경제민주화와도 비슷한 맥락인 바, 경제발전이 가져오는 혜택을 국민 모두가 편파됨 없이 누릴 수 있도록 도모하는 ‘따뜻한 보수’를 하겠다는 유승민이다. 대동(大同)사회를 지향해서 가진 자/금수저가 가지지 못한 자/흑수저까지도 따뜻하게 껴안는 정치 그래서 보다 큰 국민총화를 이루어 보다 건강하고 튼튼한 조국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오호 꼴통 보수들이여, 그렇게도 비판 받고 비아냥거려질 일이란 말인가? 도대체 당신들은 이 땅에 정치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켜 대한민국을 계급적으로 쪼개야만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바로 당신들이 의도와는 상관없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싹트게하고 키우는 자들이요, 자생적인 ‘친북 빨갱이’를 생산하는 주요 원인자들인 것이다.
II
‘유승민’ 하면, 소크라테스가 생각에 떠오른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그리스의 다양한 신들에 대한 믿음이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를 지배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신들에 앞서 그리스 고래의 로고스 우주관을 믿었다. 다시 말해, 생활문화적으로는 그가 그리스의 제신들을 믿었지만 그의 정신세계에서 신은 로고스라는 우주적 형이상학자였다. 이것이 그가 그리스문명에서 최초의 철학자로 불리게 된, 스스로도 자신을 철학자라고 생각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내면에서 늘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에게 신은 맥락에 따라 우주적 보편질서로서의 로고스이기도 하고, 우주적 보편사유로서의 이성이기도 하고, 우주적 보편도덕으로서의 양심이기도 하며, 또한 이데아 중에 지고(至高)의 이데아인 선(善) 이데아이기도 하다. 바로 이점 때문에 그가 아테네의 신을 믿지 않는다 혹은 다른 신을 아테네로 들여왔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당시 아테네의 민주제도에 의해 소크라테스를 재판한 재판관은 30세 이상의 성년남자들 중에서 추첨된 500명이었다. 이들 중에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이들 재판관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조금만 양보 했더라면, 아니 조금 굽히는 척이라도 했더라면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늠름하게 죽음을 택했다: “이제 우리는 각자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편이 더 좋은 곳으로 가는 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파이돈>이 보여주는 바, 그는 사후에 자신의 영혼이 하데스(hades), 즉 신의 세계로 되돌아갈 것을 믿어 독배 앞에서도 놀랍도록 평온했다.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으로부터 함양된 자신의 철학적 사유에서 볼 때, 스승의 죽음은 지고의 선 이데아로 되돌아간 것이었다. 불교로 말하면, 열발(涅槃)에 든 것이다. 개별 중생이 성불(成佛)하면 윤회사슬이 끊어지고 우주에 충만한 원불로 되돌아간다/그것과 하나가 된다.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선을 구현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보시를 함으로써 열반에 든 것이다.
페르시아전쟁에서 대승한 아테네는 황금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참패함으로 인해 그리스 전체를 지배하겠다는 야망이 좌절된다. 이후 30인 참주의 전제정치로 인해 신음하다가 다시 민주정치로 돌아온 아테네에 소위 소피스트들이 여러 지방에서 모여들었다. 그들이 특히 중요시 하는 것은 웅변술이었다. 대중선동이 권력을 손에 넣는 첩경이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웅변술이 정치가나 정치지망가 혹은 남에게 뭔가를 내세워 두각을 나타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프로타고라스는 웅변술 혹은 수사학의 궁극 목적이 ‘무력한 이론을 유력한 이론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는 어떤 보편의 도덕이나 불변의 진리에 비추어서가 아니라 언제나 인간의 필요와 관련해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이면은 이현령비현령 식의 궤변적 상황논리를 전적으로 긍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피스트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당시 아테네의 민주정치와 사회 분위기는 다분히 중우衆愚적이었다.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덕을 가벼이 여기고 재물과 향락과 명애와 권력을 탐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생득적으로 품부된 보편의 로고스적 이성이 무디어져 버렸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사람들의 이성을 일깨워 조국 아테네가 진정 선과 정의에 기반된 아테네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나섰다.
방법이 무엇이었는가? 로고스/이성을 믿는 그는 당연히 이성의 분유分有인 말(언어), 즉 질문과 대답을 기본으로 하는 대화와 토론이었다. 우연인가 어떤 섭리인가, 그의 어머니는 산파였다고 한다. 산파의 역할은 남의 출산을 돕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마치 산파인 자기 어머니가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에게 내재된 이성을 일깨우도록 도와주었다. 자신이 임신을 해야만 제 아이를 얻듯이,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이성을 일깨워야만 참된 이성이 발휘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소위 소크라테스적 반어법을 구사한다. 짐짓 소크라테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혹은 대화상대보다 더 어리석은 것처럼 꾸미면서, <크리톤>에서 크리톤과 소크라테스간의 대화에서 보는 것처럼, 특히 귀납적 논리가 정연하도록 질문을 해나가서 그의 질문에 말려들도록 한다. 그래서 상대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이성을 이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스스로가 이성을 회복하도록, 즉 스스로가 선하고 정의로운 생각과 태도에 이르도록 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학식 있고 가문 좋은 젊은이들이 소크라테스를 따르고 추종했다. 장소와 상대를 가지리 않고 그러한 대화와 토론을 일삼는 소크라테스는 당시 권력자를 포함한 많은 유력인사의 양심을 찌르는,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한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점을 알고 있는 그는 스스로도 자신을 등에 - 말이나 소에 달라붙는, 몸이 크고 잔털이 많은 일종의 파리 - 에 비유했다. 플라톤은 <변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소크라테스]는 신이 이 나라에 달라붙도록 한 등에입니다. 이 나라는 혈통이 좋고 몸집이 크지만 둔해져서 각성이 필요합니다. 신이 나를 마치 등에처럼 온종일 어디든 그 누구라도 따라가서 붙잡고 설득하고 비난하고 각성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 그러나 아마도 여러분은 누가 잠을 갑자기 깨웠을 때 화내는 것처럼 그렇게 화를 내면서 아뉘토스[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주모자]의 말만 믿고 나를 경솔하게 죽일 테지요.
진정 아테네를 위해 등에 역할을 한 소크라테스. 그의 비판을 두려워하고, 반성과 각성을 회피하는 당시 보수적인 권력가와 명망가들은 그에게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에 더해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죄목을 추가해서 결국 그는 독배를 마시게 된다. 그의 육신은 죽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플라톤 철학이 내다 본 대로, 정의롭고 아름다운 지고의 선 이데아로 되돌아가서/그것과 하나가 되어 서구문명의 보편적 질서 속에, 서구인의 이성적 사유 속에 세세토록 살아있다.
유학의 존재론은 이일분수(理一分殊)이고, 도가는 도일분수(道一分殊)이며, 불교 역시 불일분수(佛一分殊)인 바, 플라톤 철학도 이데아일분수이다. 흑수저가 흑수저를 껴안는 것도 큰 선(善)일진대, 자신은 금수저임에도 흑수저까지도 모두 껴안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자 정치적 생매장까지 당하면서도 여일한 초심으로 분투하는 유승민. 당신이야말로 선 이데아의 분수(分殊)이어라!
III
‘유승민’하면, 새삼 새누리당의 소크라테스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아테네의 페르시아와의 전쟁 승리, 이에 따른 아테네의 오만함과 나태함, 이로 인한 스파르타와의 전쟁 참패, 소피스트들과 중우적 사회 분위기, 반성을 두려워하는 보수 정치가들, 소크라테스를 죽이기 위한 아뉘토스 일파의 궤변적 선동, 소크라테스의 늠름한 최후 연설과 의연한 죽음…
이러한 생각에 오버랩 되어 떠오르는 당시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 이에 따른 새누리당의 오만함과 나태함; 이로 인한 총선 참패; 책임회피에 급급하면서 반성을 두려워하는 보수 정치가들; 대선 한 번 치렀다고 해서 ‘청와대가 만사의 척도’인 꼴통보수들; 이들에 대항해서 결코 청와대가 헌법 제1조를 이길 수 없음을 만천하에 역설하는 유승민; 이러한 유승민을 죽이기 위해 펼쳐진 청와대와 이한구를 필두로 하는 진박 일파의 그 비겁한 궤변적 선동;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드리는 유승민의 그 늠름한 태도… 그 때 우리들 마음의 귀에는 당신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소: ‘이제 우리는 각자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 편이 더 좋은 곳으로 가는 지는 오직 하늘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유승민, 당신은 맹자가 말한 그 하늘의 뜻을 올바로 읽었소.
당신은 새누리당이 정의롭고 선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하늘이 내리신 큰 인물이오.
당신의 ‘따듯한 보수’ 이념에 반드시 하늘의 가호가 있을 것이오.
건투를 비오!
강 학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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